UNION SPACE (2015)

接合空間, 접합공간

일반적으로 인간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시각, 청각, 촉각 등에 의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기하학적 빈 곳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개념은 예술, 철학, 물리학에서 각각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술이나 건축에서는 표상으로의 공간, 철학에서는 경험적 공간, 물리학에서는 차원에 대한 공간의 개념과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어지는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류한길, 윤지현, 김태윤은 이러한 공간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크기와 넓이를 가지는 수치적 해석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인식체계로 표상화할 수 없는 그러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전파와 에너지를 이용한 사운드 경험 공간으로의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물리적 범위와 형태를 바탕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전파나 에너지가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도록 유도하고 왜곡시킴으로써 드러나게 된다. 20-1766MHz 대역의 주파수를 스캔하여 소리의 형태로 조합하고, 이를 다시 한 공간에서의 위치나 밀도의 변조, 예를 들어 물과 같은 공간을 통과시킬 때 새롭게 부여되는 경험적 공간과 왜곡이 만들어내는 접합공간(union space, 接合空間)을 설계하였다. 전파와 사운드에 중점을 둔 본 프로젝트는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수집된 데이터, 시각 이미지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와의 결합 또는 개입을 통해 예술적, 철학적, 물리학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Artist Taiyun Kim + Jihyun Yoon + Hankil Ryu (Plan B)

_ 2015.10.16 – 2015.10.30
_ Space Feelux (ARKO Art Center) + Space Haebang, Seoul, Korea

플랜비_접합공간_아르코미술관_스페이스 필룩스_2015

Union Space, an Uncomfortable Cohabitation of Collaboration and Convergence

This project was triggered to reveal how the three members of Plan B led their uncomfortable co-living with the purpose of collaboration for the last three years, with demonstrating the process of co-working. Three of artists, Hankil Ryu, JiHyun Yoon and Taiyun Kim have maintained their uncomfortable cohabitation by organizing the artist collective plan B while accidently involving one project together, where they shared the knowledge and experiences, working independently at the same time. This situation reflects the awkward reality that many of media artists face nowadays. We are surrounded by national agenda of ‘Collaboration’ and ‘Convergence’ and also required to specify those values. The Artists in residence + C-Lab run by Arko Art Center is currently utilized as a co-working space with shared and individual intention. Each artist tries to reach the consensus in this public realm out of personal space, yet it is still one part of large organization and becomes another kind of separated space within a wole. It is the same problem that happens in a “world of convergence” as if the theory of relativity could not be applied in the quantum physics of microscopic world. Union space is where the different physical and socio-political conditions join and collide just like the space of Schrödinger's cat. What is the technical, social and artistic probability that three of individual members and related factors would be fixed in the specific condition within this union space? And how the different group of people such as art critics or audiences could affect our activities? Union space is therefore the sensorial field that questions how much the artists of today are open to the scientific ways visually and acoustically and furthermore the space where the cognitive system crashes and converges. Well, would you dare to open this uncomfortable union space now?

플랜비_접합공간_라디오_Radio_87.7Mhz_공간 해방_2015

협업과 융복합의 불편한 동거, 접합공간

이 프로젝트는 지난 3년간의 플랜비의 불편한 동거(협업) 생활과 그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플랜비라는 이름으로 다 같이 또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류한길, 윤지현, 김태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2012년 한 상업적인 프로젝트에서 우연히 만나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는 기술과 예술, 그리고 협업과 융복합이라는 전 국가적 시대 상황이 만들어 낸 미디어 예술가들이 처한 불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후 몇 번의 전시와 레지던시를 거쳐 지금은 ‘아르코미술관 융복합 레지던스+랩’에 자리를 잡은 이 세 명의 작가는 개별적 의도들을 가지고, 일종의 합의의 공간으로 이 작업 공간을 활용한다. 세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격리된 공간에서 나와 이 공용의 작업 공간에서 합의를 이루어 보려고 하지만, 이 공간 자체는 다시 하나의 큰 조직 내부의 일부로, 또 다른 작은 격리된 공간이다. 이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상대성 이론의 법칙이 미시 세계인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융복합의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접합공간(接合空間, union space)이란 이렇게 서로 다른 물리적, 사회적, 정치적 장치들이 접합하고 충돌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공간과 같은 곳이다. 세 명의 개별적 주체(행위자)들과 그와 관련 있는 (사물이나) 사람들이 접합공간 내에서 특정 상태에 있을 기술적, 사회적, 예술적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다른 행위자인 예술 비평가나 관객들의 상태가 이들의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접합공간이란 현재의 예술 행위자들이 이러한 과학적 방식들에 대해 시각적으로, 또는 청각적으로 얼마나 열려 있는지 자문해 보기 위한 감각의 공간이자, 인식 체계의 충돌과 수렴의 공간이다. 자, 당신은 이 불편한 접합공간을 열어볼 용기가 있는가?

류한길_접합공간을 위한 사운드 모듈_Sound_Module_2015

접합지점을 관측하기 위한 모델 구상을 위한 에세이 (글 : 류한길)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보통 20Hz에서 20KHz라고 한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든 나는 16700Hz 대역부터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반면 중학생들의 경우 18000Hz 이상을 듣는 친구들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주파 대역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한가지 공통된 것은 고주파를 내는 스피커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 진동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한편 저주파 대역으로 갈수록 고주파 대역에서의 연령에 따른 간극이 줄어들면서 30-20Hz대역에서는 연령과 상관없이 안 들리게 된다. 그러나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진동하고 있는 것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연령별 인지능력을 판단하는 모델을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델은 저주파에 대해서는 우리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저주파 지향적 사회 모델에 접근하는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윤지현_접합공간을 위한 사운드 모듈_Sound_Module_2015

시각화되는 모든 물리적 현실들 사이에는 비시각적 에너지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망막이 따라갈 수 있는 속력으로 작동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시각과 비시각의 구분 문제로 연결되는데, 결국 시각화 되는 물리적 현실 자체는 비시각적 에너지에 의해서 구성된다. 우리는 망막에 의해 필터링이 되는 현상을 시각으로 인지할 뿐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시각적인 것들 배후의 에너지 음모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는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고주파 발생기로서의 아이가 있다. 고주파 발생기를 방치하는 고주파 발생기를 유기 합성한 부모에서 부터 의식적으로 자체 고주파 필터를 활성화 시키거나 더 큰 데시벨의 음압으로 고주파를 약하게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고주파 발생기의 활발한 운동을 공간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조정하기 위해 서버로서의 부모에게 접속을 시도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가끔 이 문제는 더 커다란 소음과 격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카페는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틀어 놓았고 그 음악은 사방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고 공간 안에서 반사된다. 거리를 면한 유리벽은 아마도 내부의 음악 소리, 아이가 내는 고주파 그리고 바깥으로부터 유입되려는 거리의 소음들 사이에서 어머어마한 속도와 여러 형태의 파형들에 의해서 떨리고 있을 것이다. 이 카페 공간 안에 빈 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빈 틈을 내가 알 수 없을 뿐이지 빈 틈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꼭 찬 공간 속에서 버둥거린다.

저주파 지향적 사회 모델, 시각적인 것들 배후의 비시각적 에너지 음모론으로부터 압사 당할 것만 같은 인간의 모습을 연상하는 일들이 과연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가? 필터를 사용해서 커피빈의 특정 성분을 추출하는 것과 주파수 필터를 사용해서 소리의 특정 주파수를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태윤_당신의 별점_Your_Rating_Stars_2015

고등 과학원에서 암흑 에너지/암흑 물질에 대한 발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난무하는 수학이론과 기호들, 양자역학 등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완벽히 입증되지 않은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관측 모델 다이어그램이 과연 현대 예술과는 명백하게 다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기초 과학에 기반을 두고 세계를 바라보아도 세계는 여전히 기이한 미스테리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저 이러한 미스테리를 외면하도록 교육 받고 훈련 받는다.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관을 자신의 작업에 관성적으로 적용하여 그것을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 경우에 그 작업이 잘 보이도록 또는 어떤 감정적 효과를 불러 일으키도록 조명을 비추는 전기 에너지는 그 의미와 정녕 관계가 없는 것인가? 조명을 통해 감정적 효과가 활성화된 작업에서 갑자기 전기가 꺼지고 암흑이 되면, '의미'라고 주장했던 것은 과연 그곳에서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이 독립적으로 떨어져서 스스로의 '의미'를 주장할 수 있을까?

세계를 인간이 통제하고 조율한다는 식의 주장은 낡은 정치적 언사에 불과하다. 통제와 조율이 가능하다고 믿는 세계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이 미궁은 어떤 문제에 대한 대답을 블랙홀처럼 모조리 빨아들인다. 어떠한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정답은 정답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윤지현&김태윤_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_My Ma, Please Do Not Cross the LINE_2015

여전히 고주파 발생기는 방임 상태로 공간을, 공기를 떨게 하면서 반사에 반사를 거듭하고 있고 꽉 찬 공간을 인식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나의 답답함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나는 어떻게 고주파를 필터링해서 나를 편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발생기를 정지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서버에게 외부 클라이언트로서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한번의 꽉 쥔 주먹을 반사와 난반사의 공간 속에서 빠르게 휘두른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강한 물리적 타격을 통해 고주파 발생기가 정지한다. 고주파가 갑자기 끊어지면서 공간 안의 음 반사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 모두들 그 변화를 강하게 느끼고 유기체를 합성한 서버는 무언가 큰 에러가 발생했음을 그제서야 느낀다. 반사가 사그러드는 그 틈새를 이용해 여전히 벌벌벌 떨고 있는 유리문을 통해 탈출한다. 그러나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고 치자. 유리문을 열고 나오면 더 감당할 수 없는 공간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