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ore.kr (Lay artist, 2012)

비모아 :: 세상에 없는 모든 것

_ Nabi Creative Community Taiyun Kim | Hyegyung Kim | Hyunji Park | Minhwa Yun

_ Web :: http://bmore.kr/ (Closed)
_ API   :: http://bmore.kr/api/bmore/ [ JSON ] (Closed)

_ Creative Kitchen with Art Center Nabi, Seoul, South Korea
_ 2012.09.04.-10.06. Lay artist


우리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창을 통해 본 세상은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종종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 김태윤 작가노트 中

바야흐로 세상엔 세 개의 창이 있습니다.
초록의, 푸른, 그리고 빠알간 창.
이 창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무수한 정보들을
선택하고, 읽고, 이해하며, 살아갑니다.
이 창들은 참 좋은 것만 같습니다.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며,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 새로운 창을 제안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움직임에 동참하시려면, 아주 쉽습니다.

bmore.kr 에 접속해주세요.

우리의 움직임에 필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창으로 세상을 보려는 열린 마음과
그냥 한번 클릭해보는 잉여로움,
바로 그거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겠읍니다. (I would prefer not to.)’

글 윤민화

<bmore.kr>은 김태윤을 중심으로 김혜경, 박현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아트센터 나비의 주최로 만들어진 커뮤니티를 통해 팀을 형성하게 되었고, 약 3개월 동안 아트센터 나비에 매주 모여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진행해왔다. <bmore.kr>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김태윤이고 김혜경과 박현지는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참여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김태윤이 작가로서 가지는 태도에 더욱 긴밀하게 반응하며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기획자로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처음부터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 작품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글은 평론 성격의 작품론이라기 보다는 팀원으로서 커뮤니티를 회고하고 작품 전반을 이루는 문제의식에 대해 기술하는 글이 될 것이다.

김태윤, 김혜경, 박현지와 팀을 형성하고 목격한 것은 모두가 ‘피로’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는 지쳐있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서로 입 밖에 꺼내어 놓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입을 모아 ‘모든 것은 지나치게 많다.’고 이야기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 앞에 닥친 해야 할 일들도, 하고 싶은 일들도, 해야만 하는 일들도, 그리고 읽고, 보고, 들어야 하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에 대해 토로하였다. 이것은 모두의 개인사적인 것임과 동시에 현실사회적인 축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김태윤의 ‘피로’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그는 낮에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고, 밤에는 작가로서 작업을 하였는데 그가 하는 작업의 양상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근무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나 SNS에서 다루어지는 정보와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었고, 얼핏 보기에는 그 양상이 일종의 내부고발자와도 같아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가 느끼는 피로라는 것은, 낮 동안의 고된 업무나 빡빡하고 이중적인 일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포털의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에서 초래되는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나름의 피곤함을 발언하는 저변에는 은근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가 미디어 업계 내의 일원이기에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본인이 의식하는 문제점에 대해 안일하거나 수동적이지 않고 정확히 인정하되, 바틀비의 그것처럼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겠읍니다. (I would prefer not to.)’식의 태도를 시종일관 보임으로써 작가로서 일종의 ‘자기 위치’를 확보해 나가려는 의지로 보였다. 그의 지난 작업은 보통 사회 비평적이고, 이 비평적 시선은 미디어와 정보에 관한 것으로 소급된다고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류는 작가로서 김태윤이 갖는 태도를 미술 비평의 일환으로 읽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그의 ‘피로’와 ‘바틀비의 거부 제스쳐’를 오버랩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시선에서 <bmore.kr> 또한 읽어 보고자 한다.

<bmore.kr>은 스마트폰에서의 접근을 염두로 하고 만든 모바일 웹 사이트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어 데스크탑이나 랩탑을 이용하지 않고도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일반적인 웹 사이트와 거의 비슷한 양의 정보를 똑같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유저들에 의해 활용되는 포털 사이트들 (네이버, 다음, 네이트) 중에 적어도 한 두 개 쯤은 누구나 어플리케이션으로 다운 받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김태윤은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모바일 포털 사이트의 사용 빈출도는 본래 웹 상에서 드러나는 빈출도와 거의 유사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말한다. 즉, 달라진 인터페이스에서도 사용자는 새로운 포털 사이트를 찾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사용하던 익숙한 사이트를 그대로 모바일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윤은 이러한 유저들의 사용 양상에 대해 끊임 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듯 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하여 비슷한 과잉 상태에 스스로 놓이도록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았다.

보드리야르는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고 한 바 있다. 그가 지적한 것은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였다.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은 거부 반응을 초래한다.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은 이 시대가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증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접하게 되는 과잉 정보 때문에 갈피를 잃은 마우스 클릭을 이곳 저곳에 연발하다가 결국 기억에 남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이 사이트를 벗어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양질의, 필수적인 등의 수식어를 뺀 말 그대로의 정보 그 자체는 넘쳐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정보를 미디어 시스템이 양산해 낸 일종의 ‘긍정적인 것’들로 분류하고 싶다. 여기에서 긍정이라는 것은 일종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다. 또한 이러한 수많은 긍정적인 것들과 쌍을 이루는 개념으로 ‘피로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앞서 필자가 팀원들을 만났을 때 목격한, 그들이 이 사회에 대해 동일하게 갖고 있던 바로 그 피로감 말이다. 이 피로감은 무한한 할 수 있음- 즉 긍정적인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넘쳐나는 정보와 생산성들은 할 수 있음을 넘어서 피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긍정적인 힘으로 가득 찬 곳에서 밀려드는 많은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우리의 지각은 그 어떤 ‘정신적인 것’을 발견해내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치명적인 활동 과잉 상태에 빠져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정보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고 돌이켜 회상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그러니까, ‘부정적인 것’이다. 이 부정성은 아마도 니체가 말하는 ‘아니오’에 가까울 것이다. 부정적인 힘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약이 이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bmore.kr>은 같은 것에 의존하며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는 이 시대 모든 포털 사이트 유저들에게 ‘거부’라는 제스쳐로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되 스스로를 ‘잉여’라 칭하며 익살맞지만 정중하게 부정성의 존재로 자기 위치 시킨다.

마지막으로 다소 서정적인 회고로 말미를 장식하자면, 한 가지 주제에 밀도 있게 천착하며 서로 다른 필드의 전문가들이 만나 협업을 이루어내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필자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뚝딱 만들어 낼 재간과 열정이 충분했다. 더욱이 고착된 미디어 환경에 대한 비판을 논하면서 <bmore.kr>과 같은 새로운 창을 제시하는 것으로 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바틀비 식의 자기 거부, 자기 소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겠읍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는 상호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시적 장치를 고안해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bmore.kr>이 시사하는 새로운 창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궁금하다. 미디어 환경이 우리 앞에 밀어 놓는 과잉 정보로 치장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책 없는 긍정으로 흡수하여 소화 불능에 걸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bmore.kr>에 접속해 보기 바란다.

* 여기에서의 ‘피로’는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명한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것을 의도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 공진호 역 | 문학동네 | 2011
피로사회 | 한병철 | 김태환 역 | 문학과 지성사 | 2012
긍정의 배신 | 바바라 애런라이크 | 전미영 역 | 부키 | 2011


<비모아 검색창 & 인기검색어 설치 장면>, 2012, 타작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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