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World! (2014)

Good Morning Mr.Orwell 2014 :: You’ll see why 2014 will be like '1984'.

Artist Taiyun Kim & Ji Hyun Yoon

Curator Chaeyoung Lee
Coordinator Heeseung Choi

Comissioned by Nam June Paik Art Center for Good Morning Mr. Orwell 2014
_ 2014.7.17 – 2014.11.16

Performers Younglae Ko, Youngwon Kim, Jinsook Kim, Juhee Park, Seoung Soojin
Performers Gunwoo Lee, Kwangwoo Lee, Jinny Lee, Jaehee Lee, Eunha Choi

Good Morning Mr.Orwell 2014
http://www.e-flux.com/announcements/good-morning-mr-orwell-2014/
http://old.njpartcenter.kr/en/program/sp_exhibitions/show.asp?id=282
http://njp.ggcf.kr/archives/exhibit/goodmorning-mr-orwell

After being used for a specific purpose, the personal information, randomly extracted, can be discarded by a lucky chance, or will be carved into the digital server like petroglyphs or a floating ghost. This data is unwittingly analyzed and utilized by the capital and the government. In all parts of everyday life, we can’t avoid the gaze of surveillance cameras or the unintended capture. Even the terrifying society, controlled by Big Brother in George Orwell’s 1984, might be less horrible than ours, because Big Brother was visible anyway. In 2014, we are being captured by the invisible gaze, stored, manipulated, utilized and controlled.

<Hello, World!> is a multimedia installation, but also a performance piece, conceived for the exhibition <Good Morning Mr. Orwell 2014> held at Nam June Paik Art Center. 30 years after that Nam June Paik revisited the communicability of the future bleakly depicted by George Orwell, <Hello, World!> starts from the gloomy parody of the famous optimistic advertising copy that the Apple Inc. had naively spread in 1984 : “You’ll see why 2014 will be like 1984”.

The heart rate and the temperature of the participants in <Hello, World!> will be collected in a non-contact way. In following the friendly guidance, they should remember given numbers, print out the hints and connect to the network in order to delete their own personal data, instantly collected. The Yun-Yoon data synthesizers, named after the artists, are accumulating in them the participants’ randomly collected data, from which the artists produce new metadata and visualize them in real time by entering the data into the video image. For deleting personal data on the server, audiences should find someone who has same graphic image on the receipt which has delete code. Audiences face to paradoxical situation that they should find someone for erasing data not in the on-line but off-line. Even though the information collected in the synthesizer is not personal information to verify their identity, some audiences feel some anxiety of this kind capture and try to delete. However, many of them give up deleting their data just like we have captured everyday life. From this process we will recognize the landscape of the digital age when we can’t control the spill and the collection of our personal information, which can be captured and exploited.

As now “everybody has his own TV channel”, that Nam June Paik predicted, the ‘Big Data’, the archives of the data voluntarily stored through individual channels, is facing challenges of the capture, curation, storage, search, sharing, transfer, analysis and visualization. (http://en.wikipedia.org/wiki/Big_data) Big Data probably could open new possibilities for the medicine, geography, sociology, and many realms of science and technology, but at the same time, it can be extensively used for commercial or political purposes. Even we haven’t asked question and discourse how to allow the public use of personal information, we are being captured day after day.

무작위로 추출된 개인정보는 특정한 목적에 사용되고 운이 좋으면 폐기되지만 디지털 서버에 새겨진 암각화처럼 좀처럼 지워지기 어려운 저장된 정보는 유령처럼 떠돈다. 이 유령의 데이터는 부지불식간에 자본과 정부에 의해 분석되고 활용된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감시 카메라의 시선을 피할 수 없으며 곳곳에서 의도치 않게 캡쳐 된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조지 오웰의 <1984>가 그리는 무시무시한 통제사회는 오히려 가시적이어서 덜 공포스러울지 모른다. 2014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시선에 포착되고, 저장되며 조작되고, 사용되며 통제된다.

<헬로, 월드!>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를 기념하여 제작한 멀티 미디어 설치이자 퍼포먼스 작품이다.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조지 오웰이 상상한 미래의 소통 가능성을 실험하였다면 <헬로, 월드!>는 그로부터 30년 후 우리의 삶이 1984년 애플의 철없이 낙관적인 광고 카피를 비틀어 “당신은 왜 2014년이 1984년과 비슷한지 보게 될 것이다 You’ll see why 2014 will be like 1984”라는 암울한 선언 속에서 기획되었다.

<헬로, 월드!>에서 관람객은 심박수와 체온을 비접촉 방식으로 채집 당한다. 기계음의 친절한 안내에 의해 순간적으로 수집된 자신의 데이터를 삭제하려면 자신의 아이디를 기억하고 힌트를 출력하고, 접속해야 한다. 작가의 이름을 딴 Yun-Yoon 데이터 신디사이저에는 무작위로 수집된 관객의 데이터가 쌓이고 이 데이터들을 가지고 작가들은 영상 이미지 속에 개입시켜 새로운 메타 데이터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시각화한다. 작품은 관객의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의 아이디를 알려주는 키오스크+채집된 정보의 아이디를 입력하면 메시지를 출력하는 출력기+그리고 이 정보를 저장하고 이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메타 데이터를 생산하는 Yun-Yoon 데이터 신디사이저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이 채집한 정보는 비록 개인을 식별하는 민감 정보는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정보가 채집된 관객들은 기계가 지시하는 행위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정보의 유출과 채집을 통제 못하는 개인, 그리고 수집된 데이터가 이용되고 사용되는 디지털 시대의 풍경을 보게 된다.

백남준이 예언한 “모두가 각자의 채널을 지니”게 된 지금, 개인의 채널이 자발적으로 저장해준 데이터의 아카이브, ‘빅 데이터’는 “캡쳐하고 발굴하고, 저장하고, 검색하고, 공유하고, 전환하고,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도전”(http://en.wikipedia.org/wiki/Big_data) 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도전과제가 수행됨으로써 ‘빅 데이터’는 의학, 지리학, 사회학, 그리고 과학기술의 많은 분야에 가능성을 여는 동시에 상업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적인 정보의 공적인 활용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채 던지지 못한 우리는 매일 매일 캡쳐되고 있다.



장회익과 브뤼노 라투르, 그리고 백남준으로부터의 ‘융복합’ 편지 (글 : 김태윤)


“김태윤님께. 이 책이 정신적 발전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장회익”

2010년 여름. 서촌의 한 서점에서 있었던 양자 역학에 관한 녹색 아카데미 강좌에서 물리학자이자 과학 철학자인 장회익 교수님(이하 장회익)을 처음 만나 뵙고 위의 문구와 함께 책에 사인을 받았던 날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열역학과 같은 물리학 보다는 컴퓨터 공학을 좋아해서 졸업 후에는 IT업체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다가 다시 회사를 관두고 밴드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예술과 기술의 갈림길에서 ‘내가 배웠던 모든 학문은 별개’라고 생각하며 부정만 하던 내게 ‘메타 과학’이란 용어는 매우 생소했고, ‘학문에 대한 학문’을 통해 ‘물질, 생명,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약 2주일 뒤인 2010년 9월 1일 생애 첫 전시가 있었고, 그것은 내게 선택해야만 하는 하나의 갈림길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통합해 보려는 첫 발걸음이었다.

속도는 얼마만큼 빨라질 수 있을까?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 웹 서비스 개발자로 일을 하며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대용량 데이터처리에 한참 몰두해 있을 때의 나의 머리 속은 오직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보다 빠른 연산 속도와 병목 현상을 피할 수 있는 분산 처리 방식 등을 고민했고 클릭과 동시에 0.0001초라도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자 했다. 솔직히 말을 하자면, 내가 만든 시스템의 주인(root)으로 행사할 수 있는 초월적인 권한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이 시스템에서는 내가 곧 법(질서)이자 신이라는 오만한 생각. 하지만 당시의 나는 큰 틀이 아닌 부분만을 보고 있었고,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부족했다. 스스로 ‘전문가’라는 좁은 틀에 나를 가둬놓고 그 이상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인생에서 가장 큰 우회-옆걸음질-를 해야 했다.

컴퓨터의 역사는 곧 디지털 미디어의 ‘속도’의 역사다. 처음에는 CPU 처리 속도(클락)로 경쟁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코어의 개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융복합도 이와 마찬가지 상황인 것 같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낼 수 있는 속도 보다는 여러 명의 전문가가 같이 뛰다 보면 낼 수 있는 속도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각 전문가들이 인텔과 AMD 만큼이나 호환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프로토콜의 문제라면 기술적으로 접근해 쉽게 해결하면 될 것 같지만, 이것은 내가 2000년대 초반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과학인문학’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브뤼노 라투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번역’의 문제이고, 기술이나 과학을 넘어 더 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컴퓨터의 ‘속도’는 비단 CPU 뿐만 아니라 메모리, 저장장치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프로토콜, 또한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숙련 정도나 알고리즘을 비롯해 이를 가능하게 했던 과학 원리와 정치, 경제적인 문제 등 보다 많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고 이는 각 요소가 행위자(ACTOR)로서 연결(NETWORK)되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위자로서 전문가는 어떠한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는 오랜 시간 전문 지식을 쌓은 사람이다. 전문 지식은 선행 연구자의 길을 쫓아가는 ‘가속도’의 도구로, 여기에서 가야 할 길과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다른 방향으로 힘들게 길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을 조금 넓히거나 혹은 조금 더 빨리 가는 정도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회사 역시 조금 더 빠른 ‘제품’을 내놓는 속도의 경쟁에서 밀리지만 않으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속도’의 경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속도’를 더 이상 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의 ‘융복합’은 ‘속도’를 더 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융복합은 오히려 ‘속도’를 줄어들게 만들고 돌아가게 하며, 숨겨져 있던 시스템의 오류를 드러나게 하고, 여기에 ‘번역’의 문제마저 더해져 참여한 행위자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쉽고 빠르게 달려 갈 수 있는 ‘가속도’의 길을 두고 다른 방향으로 힘들게 길을 내어가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걸어가야 한다면 어느 누가 선뜻 가려 하겠는가?


자유에너지(F) = 에너지(E) + 온도(T)x정교성(D)

이 공식은 변화의 원리를 나타내는 장회익의 공식이다. 여기서 정교성(Delicacy, 질서도)은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으로, 이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한 형상은 자유에너지가 더 낮은 다른 형상으로 항상 변하려고 한다’라고 할 수 있으며, 열역학 제2법칙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로부터 1차 질서를 끌어내고, 다시 2차 질서인 바탕 질서(Ωii)와 현존 복합 질서를 이끌어 내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Ωii : {(U*V*W)m}Nm … {(U*V*W)n}Nn

위의 수식 역시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요는 융복합 역시 이러한 에너지의 흡수와 발산 과정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융복합을 이 모듈 단위인 (U*V*W)k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다른 차원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다른 차원의 질서를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른 차원의 질서가 필요할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방향대로 속도를 유지하려는 항상성과 변화하려는 힘이 강렬하게 충돌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 의식 주체와 객체의 문제, 너와 나, 우리의 관계 혹은 존재론적 논의로까지 연결된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이론(ANT)에서의 ‘우회로 인한 구성’을 혹시 ‘다른 차원의 질서’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속도의 질서가- 아니라 행위자들이 참여를 통해 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가변적인 상황이 도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황이 도래했으며, 개별적 주체-행위자-들의 연결 과정을 어디까지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그 범위를 물질(사물)에서부터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질서까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낱-생명의 의식을 넘어선 온-생명의 의식 주체에 대한 인식 자체가 가능하다면, 이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우주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했던 장회익의 의견을 따르자면, 지금은 단연코 디지털 빅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폴 비릴리오가 말했던 것 처럼 ‘속도’가 지배하는 공간은 소멸해 가고 있고, 이제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디지털이 가져온 근본적인 변화이며, 이 공간에서의 질서는 (인간의 뇌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게) 매 순간 새로운 연결을 통해 다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나 공간 이라는 것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여기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약 30년전으로 돌아가보자. 1984년 1월 1일. 백남준의 인공 위성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오웰>이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규모 융복합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예술가들을 위성을 통해 쌍방향으로 연결하고 각기 다른 나라의 시청자들도 위성 전파를 통해 연결되었다. 시차와 언어, 상식과 문화의 차이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 등이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질서와 이로 인해 변화될 시공간의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사람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인공 위성은 우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기치 못한 만남을 유도할 것이며,
인류 뇌세포의 연결 고리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 백남준

이는 어떤 질서라는 것은 발견 되는 것-존재론적 관점-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만남과 접촉, 즉 관계 맺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식을 가진 주체-행위자간의 매개 방식의 차이-미디어-가 새로운 질서를 낳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새로운 질서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매 순간 질서가 바뀌는 것에 대처하는 능력. 즉 창의성과 상상력의 영역인 ‘예술’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논리 회로를 총 가동하여도 대처할 수 없을 만큼 무궁하게 연결(링크)된 경우의 수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란 것은 지금의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연결 고리를 공고히 하는 어떤 집단 의식의 형태일 것이다. 이는 개별 인간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며, 마치 질서 그 자체가 직관이나 감정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

백남준이 남긴 말이다. 하지만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카르마로, 또는 장회익의 온-생명론이나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이론(ANT)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말이다. 이외에 동양철학이나 매체철학, 혹은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할 뿐이다. 융복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자본에 떠밀려 ‘속도’를 위한 도구로써 닫힌 회로 안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융복합은 불편함을 가져올 뿐이다. 장회익의 말을 빌리자면, 암세포와 같은 존재다.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표현방식인 기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는 백남준의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1969>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내가 2010년 장회익 교수님께 드렸던 질문이다.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가장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열린 회로 안에 수많은 관계들, 즉 나와 연결된 ‘우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의 여름, 나는 윤지현 작가와 함께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굿모닝 미스터오웰> 30주년 기념 퍼포먼스인 <Hello, World!>를 선보였다. 그리고 1984년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열린 회로’를 구현하여 우리 모두를 연결하였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안부 인사였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라고.


참고문헌
장회익, 물질, 생명, 인간 -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 돌베개, 2009.
브뤼노 라투르, 이세진 옮김,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사월의책, 2012.
백남준,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 백남준아트센터, 2010.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특별전:백남준 온 스테이지, 백남준아트센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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